대구 달서구 청동기 상인동 월성동 송현동 대천동 뗀석기 간석기 입석
달서구의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 상인동 171-1번지 유적 / 월성동 1363번지 유적 / 월성동 127번지 유적 / 송현동 906-11번지 유적
상인동 채정마을이 선정(시작), 상인동과 진천동이 선앙(가운데), 유천동, 월성동, 대천동, 월암동이 선단(끝)부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곳에는 농사짓기에 매우 유리하는 곳이라고 해요. 진천천에 의해 형성된 부채꼴 모양의 퇴적 지형이 잘 형성되어 있답니다.
위치는 월성동 777- 2번지 유적(월성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전체 유적은 총 13,184점 석기가 출토되었습니다. 또한 흑요석이 발견되기도 했답니다.
뗀석기는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걸까? 뗀석기는 약 70만년 전 인류가 주변에 흩어져 있는 돌멩이를 주워서 사용했으며 그 쓰임에 맞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뗀석기라고 했고 그 시대를 구석기시대라고 합니다. 뗀석기는 처음에는 망치로 직접 내리치는 직접타격법으로 석기를 사용하다가 점점 떼기를 사용하는 간접타격볍을 사용하고, 누르는 힘을 이용해서 가공한 눌러떼기 수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주먹도끼 - 사냥을 하거나 짐승의 털과 가죽을 벗겨 내는데 사용 합니다.
슴베찌르개 - 사냥할때 창이나 화살에 꽃아서 사용합니다.
긁개 - 나무나 가죽을 손질할때 주로 사용합니다.
밀개 - 나무나 가죽 동물의 뼈를 꺽는데 사용합니다.
찍개 - 나무를 자르거나 짐승을 잡을때 사용합니다.
간석기 돌을 갈고 그 전보다 더 날까롭고 단단한 날을 얻을 수 있는데, 석기를 만드는 일도 훨씬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 점차 간석기가 만들어 졌답니다. 그리고 쓰임새에 따라서 농경용 과 공구용 사냥용 그리고 고기잡이용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농경용으로 돌괭이, 돌보습, 곰배괭이, 갈판과 갈돌, 돌낫, 반달 돌칼
공구로는 송곳, 숫돌, 돌도끼, 돌톱, 돌칼
사냥도구 - 돌화살촉
고기잡이도구 - 그물추, 낚시바늘
움집 : 원형 / 방형 / 장방형 있으며 땅을 파고 기둥을 세운 뒤 지붕을 얹은 구조입니다. 먼저 구덩이를 파고 땅을 다지기에 들어갑니다. 집모양을 정한 뒤에 먼저 50~100cm 깊이로 파서 바닥을 꼭꼭 다져서 땅속에 습기를 제거하고, 기둥을 세웁니다. 나뭇가지로 기둥과 기둥이 맞대어 튀어나온 부분(서까래)를 묶습니다. 그리고 이엉을 역는데, 억새나 갈대를 칡넝쿨로 단단히 묶어 지붕을 얹을 이엉을 엮고, 이엉은 지붕이나 담을 덮기 위해 엮는 짚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붕올리기인데, 이엉을 지붕에 얹은 다음 볕이 잘드는 남쪽으로 출입구 계단과 문을 만들고 마무리를 합니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모습 : 청동기 시대의 토기 / 농사지을때 사용하는 돌낫 / 농작물을 수확할때 쓰이는 반달돌칼 / 청동기 시대의 각종 장신구들 , 옥산 무기동 옥현 유적지의 청동기 시대의 논유적 , 진주 대평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밭유적
달서구의 청동기시대 분묘 유적
월성동 지석묘는 4 / 상인동 지석묘 3 있으며 , 월성동 1257-12번지 유적, 진천동 716-6번지 유적, 상인동 1275번지 유적, 대천동 511-2번지 석곽묘 유적 등이 있습니다.
입석
월암암동 입석 1~4 , 진청동 입석 , 상인동 입석 / 손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제의유적이랍니다. 선돌은 마을의 수호와 풍요 그리고 기원 등 원시종교적인 기능과 마을의 이정표 기증이 있답니다. 선돌을 통해서 마을의 안녕을 위해 마을 사람들과 군장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위를 비롯해 여러 물건들에 자기들의 염원과 소망을 담은 그림을 그려져 있어요. 그러한 그림을 암각화 합니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 울주 천전리 암각화, 고령 양전리 암각화 등이 유명합니다. 달서구에는 진천동 입석 / 상인동 입석 / 월암동 입석 이 있습니다. 발굴조사 방법으로 유적 평명조사, 유적 토층조사, 유적 내부조사, 유물수습1,2 실측을 하고 드론촬영과 사료분석과 유적측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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