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안의 광풍루 누정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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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있는 조선전기 이안현감 전우가 건립한 누각으로 팔작지붕 형태 입니다.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층 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이며,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금호천의 강가에 있으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누각의 경우에는 태종 12년 1412년 이안현감 전우가 지었습니다. 당시에는 '선화루'라 불렸습니다. 그 뒤에는 세종 7년 1425년 김홍의가 현위치로 옮겨 세웠습니다.  성종25 1494년에 현감이었던 정여창이 중수하여 이름을 광풍루로 고쳤습니다. 정유재란에 불에 타버린 것을 선조 35년 1602년 현감 심종진이 복원하고 3년 뒤에 1605년에 현감 장세남이 중건이후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4월 7일 안의면의 유지 변홍록 등 10여명이 300여 원을 광풍루 수리 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안의광풍루수리기성회를 조직하고 수리하고 모자란 금액은 대한의연금 모금 방침을 의논하여  오랜세월이 지나서 많이 퇴락한 것을 1980년에 단청을 새로하고 주변을 정화하였습니다. 

함양 군자정 정여창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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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 군자정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천리에 있는 정자 입니다. 현재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380호로 2005년 10월 13일에 지정되었습니다.  이곳은 정여창 선생의 처가가 있는 곳으로 선생이 처가에 들러 유할때는 군자정이 있는 영귀대에서 유영하였습니다.  정선전씨 입향조인 화림재 진시서 공의 5대손인 전세걸, 세택이 일두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1802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으로 칭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몇 차례의 보수가 있어나 내용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군자정은 거연정에서 하류쪽으로 150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정면의 주칸을 5자, 측면의 주칸을 4자 정도로 잡아주는 규모 입니다.  가구는 5량 구조로 대들보위에 보방향으로 판재를, 도리방향으로는 2단의 각재로 짠+형의 부재로 중보를 받도록 했습니다. 홀처마에는 팔작지붕형식 입니다.  천연의 암반위에 단동으로 세운 중층 누각건물 입니다. 내부에는 방을 들이지 않고 모두 튀워 있습니다. 정면의 우측으로 판재로 만든 계단을 두어 누로 오르게 하였고, 4면 모두 기둥의 바깥쪽으로 약 15~18cm 정도를 연장하여 계자난간을 둘렀습니다. 마루는 장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원래는 우물마루였다고 합니다.  하천내의 자연암반 위에 조성된 정자건물입니다.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리며, 건물의 입면비례가 적절하고, 조선후기 정자건축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있습니다.  현재는 함야군에서 원형복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평마을 일두고택 미스터션샤인 촬영지 하동정씨고가 오담고택 풍천노씨댁종가 노참댁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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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 일두고택, 중요민손속문화재 제 186호, 15세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정여창의 고택이며, 대지 3천평입니다. 11개동의 건물이 있고, 18세기에 사랑채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건물이 16~17세기에 건축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빼어난 건축물로 1984년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됩니다.  입구에 솟을대문이 있고, 위에 보시면 정려편액이 있습니다. 전부 5개 입니다. 5개를 넘는 경우는 극히 드문경우라고 합니다.  입구 솟을대문와 행랑채가 있고, 입구에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이고, 뒤편에 안채가 있고, 바로 옆에 안사랑채가 있는 구조 입니다.  사랑채는 가장 주로 이용하며, 손님 접객을 합니다. 이곳에서 젋은시절 허백련 화백이 체류하며 그림을 그렸던 곳으로 최근에는 여기서 토지, 백치 아다다, 다모, 미스터션샤인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행랑채에는 집안일을 돌보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또한 과객들이 머물기도 합니다.  안사랑채는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안사랑채는 며느리에게 안채를 물려준 윗대 안방 마님이 머물던 곳입니다. 사랑채 바로 옆에 있습니다.  안채는 여성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랑채 뒷편에 있고, 바로 옆에 문을 통해서 사랑채로 들어가면 됩니다. 이곳은 여성들의 생활 공간으로 부인과 자녀들이 머물던 곳 입니다.  하동정씨고가,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따라 대문채로 들어가셔도 좋고, 정면6칸 측면1칸에 전후퇴를 둔 안채입니다. 안채, 사랑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넓은 마당과 나무 사이로 그림같은 집이 나옵니다. 맞배지붕으로 부섭지붕을 하였으며, 기록에 의하면 1644년에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배면퇴와 후면퇴에는 머름을 두었으며 큰방과 인접한 후퇴칸에는 뒤주처럼 보이는 수장처를 두고 있고, 창호는 판장문으로 처리하고 대청의 강운데 기둥을 연결하는 장귀들은 3개의 부재를 이어 촉으로 고정시켰습니다.  오담고택, 안채는 정...

한국의 서원 9개의 서원 서원과 향교의 배치,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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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사립 교육기관 입니다.  한국의 서원은 16세기중반에서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된 대표적인 성리학 교육기관입니다. 현재는 약 670여개 서원이 있고, 대표적인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국의 서원의 경우에는 하나의 유형으로 정립되는 과정 뿐만 아니라 성리학이 동아시아 전역에 확산되어 지역적 특색을 가진 사례로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강학과 성리학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였고, 정기적으로 제향을 봉행해 학파의 결집과 교류와 유식(자연속에서 수양하고 휴식)을 통해 성리학에 부합한 향촌 성리학을 배우는 과정의 하나 입니다.  서원의 공간구성은 크게 제향영역, 강학영역, 교류 및 유식영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제향영역의 사당의 경우에는 제향인물의 연고가 있어야 합니다. 대체적으로 제향인물의 고향과 거주지역이거나 강학처나 인근에 묘소가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향공간 :  제향인물의 위패를 모시는 봉안하고, 정기, 비정기 제향 의례를 하는 사당 입니다.  제향에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고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입니다.   강학공간 : 서원 강학 활동을 위한 강당 입니다.  기숙과 개인 학습하는 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서원의 강학과 관련한 서적과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이 있습니다.  교류와 유식공간 : 규모가 큰 곳에는 입구에 2층 누마루가 있습니다.  서재와 동재 앞에 유식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있습니다.  유생들의 유식을 위해 조성한 연못이 별로 있습니다.  한국의 서원은 총 9군데 입니다. 현재 위치는 논산, 정읍, 장성, 함양 , 달성(대구), 경주, 안동(도산,병산), 영주 입니다.  ✔️ 논산 돈암서원 ✔️ 정읍 무성서원 ✔️ 장성 필암서원 ✔️ 함양 남계서원 ✔️ 달성 도동서원 ✔️ 영주 소수서원 ✔️ 안...

고대국가 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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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국가 "북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등장하는 북명 입니다. 예맥의 국가로 분류 되고 있습니다.  '예맥인' | '예인' | '맥인' 으로 구분하는데, '예맥인' 고조선, 진번국, 임둔국, 낙랑국, 대방국이 있으며,  맥인은 고구려, 백제, 비류국, 조나국, 개마국, 구다국, 주나국, 해두국, 해인국, 황룡국, 맥국, 대수맥, 소수맥, 양맥으로 구분됩니다.  '예인' 으로는 부여계인 고리국, 북부여, 동부여, 갈사국, 졸본부여 이며, 옥저계는 북옥저, 남옥저, 동옥저 , 동예계로 불내예국, 화려국, 북명  기원전 3세기 부터 남만주와 한반도 중북부에 정착했던 민족으로, 한민족의 직계 조상입니다. 신라는 고조선 유민들이 남하해서 세웠고,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로부터 유래되어 모두 다 예맥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예맥은 보통 평야지대는 예로, 산간지대는 맥으로 구분한다는 글을 본적 있습니다.  예맥국가 중에 예인에 보시면 북명이 나옵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어딘가의 국가", 혹은 "도시" 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뜻을 풀이하면 "어두운 북쪽 바다" 라는 의미 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는것 같습니다.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북명은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국가보다는 명칭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라에서 나오는 북명은 강원도의 동해안 일대로 보고 있습니다. 9주 5소경 중에 명주와 한자가 같다고 보고 본래 북소경에서 개칭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구려에서 나오는 북명은 신라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으로 보고있습니다. 북명은 부여를 치러 북상 할때 있었곳이어서 당시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보다 북쪽에 존재로 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자가 북쪽방향을 뜻하는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수수께끼 세력" "미스터리한 세력...

가야문명의 길 금관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소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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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고분군은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한 고대 가야의 역사와 교류를 보여주는 7개 지역의 고분 유적입니다.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가야문명의 길" 이라 불리게되었습니다.  가야고분군은 1~6세기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의 7개 고분군으로 이우루어진 연속유산으로 2023년 8월 1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가야는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국가 입니다. 국가 연맹체이며,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집니다. 전기가야는 금관가야를 중심 으로, 후기 가야는 대가야를 중심 으로 이들은 국가 연맹체로 나라를 만들어 갔습니다.  ✔️ 고령 지산동 고분군(대가야) ✔️ 고성 송학동 고분군(소가야) ✔️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 김해 대성동 고분군(금관가야) ✔️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비화가야) ✔️ 함안 말이산 고분군(아라가야) ✔️ 합천 옥전고분군(다라국) 가야는 변한의 12개 소국을 결집하여 성립되었고, 김해의 구야국이 문화 중심으로 가장 발전된 면모를 보였습니다.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 전기 가야의 연맹이 몰락 하면서 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 가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532년 김해의 금관국이 멸망하고, 562년 고령의 대가야 역시 신라에 의해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야의 모든 제국들은 신라에 병합되었습니다. 가락 or 가라 라고도 불립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기능말다간기"와 "기본한기", 우사기아리질지라기"에서 가야왕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가야의 어원은 가람과 연관짓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한 고구려어로 성, 나라를 뜻하는 단어 구루와 동계어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한, 진한, 변한의 마,진,변 역시 그 지역의 토착민이 성을 뜻하는 단어로 추정합니다. 설화 "삼국유사 가라국기"에서는 9명의 간들이 하늘에 빌어 '하나의 자줏빛 끈이 드리워지고 6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