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문명의 길 금관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소가야

 



가야고분군은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한 고대 가야의 역사와 교류를 보여주는 7개 지역의 고분 유적입니다.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가야문명의 길" 이라 불리게되었습니다. 

가야고분군은 1~6세기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의 7개 고분군으로 이우루어진 연속유산으로 2023년 8월 1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가야는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국가 입니다. 국가 연맹체이며,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집니다. 전기가야는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 가야는 대가야를 중심으로 이들은 국가 연맹체로 나라를 만들어 갔습니다. 


✔️ 고령 지산동 고분군(대가야)

✔️ 고성 송학동 고분군(소가야)

✔️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 김해 대성동 고분군(금관가야)

✔️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비화가야)

✔️ 함안 말이산 고분군(아라가야)

✔️ 합천 옥전고분군(다라국)


가야는 변한의 12개 소국을 결집하여 성립되었고, 김해의 구야국이 문화 중심으로 가장 발전된 면모를 보였습니다.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 전기 가야의 연맹이 몰락 하면서 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 가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532년 김해의 금관국이 멸망하고, 562년 고령의 대가야 역시 신라에 의해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야의 모든 제국들은 신라에 병합되었습니다.







가락 or 가라 라고도 불립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기능말다간기"와 "기본한기", 우사기아리질지라기"에서 가야왕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가야의 어원은 가람과 연관짓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한 고구려어로 성, 나라를 뜻하는 단어 구루와 동계어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한, 진한, 변한의 마,진,변 역시 그 지역의 토착민이 성을 뜻하는 단어로 추정합니다.



설화

"삼국유사 가라국기"에서는 9명의 간들이 하늘에 빌어 '하나의 자줏빛 끈이 드리워지고 6개의 둥근 알이 내려왔는데, 다섯은 각기 읍으로 돌아가고 하나만 이성에 남았구나'하고 그 하나는 수로왕이 되고 다섯은 각각 5가야의 주인이 되었다' 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나라가 없던 백성들이 하늘의 명을 받아 구지붕에 올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하며 제사를 지내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서 쌓인 황금 알 여섯 개가 내려왔다. 10일 지난 후, 먼저깨어난 수로를 왕으로 모셨습니다. 그 나라가 가라국(금관가야) 입니다. 그리고 다섯 알에서 나온 사내 아이들은 각각 5가야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의 공통점은 알, 황금알 6개 입니다.



또 하나의 설화 "정견모주" 입니다. 여신으로 숭배되는 인물이며, 가야이 시조 수로왕의 어머니리라는 설화이며, 조선 신증동국여지스람 "고령현 건치연혁조" 에서 대가야 건국신화가 기록된 부분에 등장하고, 최치원의 석리정전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석리정전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야의 산신 정경모주는 천신 아비가와 사이에서 뇌절주일(대가야왕 아진아시), 뇌질청예(금관가야왕 수로왕)를 낳았으며, 정견은 불가에서 말하는 팔정도 중 하나로 대구화상, 허황후 남매 전설에서 보듯 가야 신화가 불교의 영향을 받을 꺼라는 추정 입니다"


현재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마을 뒷편에 가게되면 정견모주의 제단, 정견모주가 하늘신 이비가를 맞이할 때 탄 꽃가마가 변했다고 전해지는 가마바위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특이점은 산신 입니다. 대가야의 고령지산동 고분군은 고구려, 백제, 신라왕의 왕릉급 무덤들이 평지나 산능선자락 정도 있는것과 달리 산꼭대기 능선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특이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악신앙을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성한 산을 우두산 이라 불렸고, 소를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인사 입구에 산신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신각에 모셔져 있는 산신의 그림은 정경모주 입니다. (원래 남자로 그려져 있는데 변경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해인사 창건한 사람이 대가야 후손 순응과 이정이 이기때문입니다. 실제로 KBS 역사스페셜 "대가야 최후의 왕자 월광은 어디로갔나(20010421) 방여을 한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대가야의 마지막 왕자, 월광과 지산동 고분군 44호분에서 발견된 35구의 비밀, 해인사에 깃든 대가야 창건설화, 대가야 최후의 전투에 관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6란의 6국가는 어딘가?

금관가야 | 대가야 | 성산가야 | 아라가야 | 고령가야 | 소가야 입니다.


참고로 00가야는 태조왕건이 936년 후삼국 통일 이후 행정 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가야'라는 명칭을 붙여 정착된것으로 가야가 존속했을 당시 불리던 정식 국명은 아니라합니다.




금관가야(금관국)

가락국(금관가야)의 초대 국왕은 김해 김씨와 인천 이씨, 허씨의 시조 입니다. 중국 후한시대 초기인 서기 42년 가야를 건국하고, 삼국유사 설화에 의하면 아유타국(인도) 공주 허황옥과 결혼했고,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중 둘은 허씨 성을 받고 김해 허씨의 시조, 아들은 금관국의 제2대 거등왕이 되었고 합니다.

"2010년 MBC 드라마 김수로"가 있습니다.



삼국사기 : 금관국, | 삼국지"위지'" : 변진구야국, 구야한국 | 일본 : 가라, 남가라, 남만, 수내라, 소내라,

수내라, 소내라 - 쇠나라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름으로 추정했을때 철의 주산지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락국기 " 동쪽에는 황산강(낙동강), 서남쪽에는(바다), 서북쪽은 지리산, 동북쪽은 가야산, 남쪽은 나라의 끝이었다" 라는 기록에 의해서 금관국의 영역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기원후 1세기 (건국) - 기원후 2~4세기(전성기 : 중국"전연,후연,북연" - 금관국 -왜 까지 해상 루트) - 쇠퇴기 : 기원후 5세기 - 6세기)


금관가야는 제23대 신라 법흥왕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김유신은 금관과야의 마지막왕이었던 구형왕의 증손자 입니다. 멸망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뿐만아니라 사로국,거칠산국 등 다양한 나라의 영향도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가야(반파국)
고령군 지역에 있던 여러 나라중 하나이며, 삼국유사에서는 대가야로 알려져있습니다. 시조는 이진아사로 "지리지"에 의하면 520년간 존속했다고 전하지만 알수는 없습니다. 가야 후기 일대 정세를 주도 했다고 합니다. 42년에 대가야를 건국 했습니다.


대가야는 삼국사기, 일본서기에는 반파국이라 하고, 의부가라, 본국이라고 불렸습니다.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초교 운동장 구석에는 대가야의 왕이 물을 마셨다는 우물, 어정이 남아 있습니다. 안쪽에는 대가야 양식의 목긴 항아리와 적갈색 안질 토끼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우물의 남쪽 500여 미터 떨어진 고령 향교 옆에는 대가야국성지 라는 비석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왕궁 터라고 짐작합니다. 그리고 북쪽에서 토성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5세기말 부터 전성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가야의 중심지 고령군과 호남 사이인 서부경남 일대(진주,합천,거창,산청) 5세기경에는 여수,순천,광양,남원,곡성,구례,장수,진안,임실군 등에서 고령계 가야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섬진강 교역로를 지키기 위해 산성과 봉수대를 촘촘하게 설치했으며, 장수와 완주에서 가야의 봉화대유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대가야는 한국사에서 가장 순장을 활발하게 한 나라이다.


522년 신라와의 동맹으로 (결혼 동맹 - 월광 태자가 탄생) 했지만 신라의 무서운 성장으로 541년에는 백제와의 동맹을 모색했습니다. 562년 이전까지 7~8년 동안 안라국을 포함한 10개 가야소국들을 하나하나 신라에게 합병을 하게되었습니다. 이사부가 거느린 군대의공격으로 멸망했습니다.






아라가야(안라국)

함안군 일대에 있었습니다. 의령 예둔리, 마산 한동 고분군, 진주 일부 지역에 한정적입니다. 초기에는 마산합포구 진동면에서 함안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삼국지 위서 도이전에는 '변진안야국', 광개토대왕릉비 '안라', 양직공도 ' 전라' 일본서기 '안라' , '아라라' , 신창성씨록 '아라라' , 삼국사기에는 '아라국', '아시랑국', '아나가야' , 삼국유사 '아라가야', '아야가야', 고려사 '아시랑국','아나가야' 라고 불렸습니다.


구야국과 같은 시기에 도질 토기 제조 기술과 생산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4세기 전반에 기벽이 대단히 얇은 양질의 도질 단경호를 생산하였습니다.


5세기 아라가야 양식의 고베는 4세기 안라국의 특징적인 형식인 工 자형 대각의 폭이 넓어지며, 화염 문양의 투창이 뚫립니다. 독자적인 생산 체계가 있습니다. 가야 소국들이 안라국을 형님처럼 모신다는 묘사가 일본서기에 기록되었습니다. 6세기 들어 백제와 신라의 영향을 받았고, 백제계 금속기와 토기, 신라계 의장용마구가 출토 되었습니다.

현재 문헌상 기록에 의하면 560년 전후가 멸망으로 보고 있습니다.




소가야(고자국)

변한의 소국으로 소가야로 알려졌습니다. 경상남도 고성일원에 있습니다. '곶의 나라' 라불렸습니다. 주변이 넓은 평탄지가 형성, 동서쪽으로는 굉장한 저지대, 서쪽에는 고성 도심지, 동쪽으로는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고자미동국, 고사국, 고차국, 고지국, 구차국 으로 표기 되었습니다. 설화에 따르면 말로왕이 나라를 건국했다고 합니다. 구지봉에서 나온 6동자 중에서 제일 막내라고 합니다.


고차국은 포상팔국의 난에서 신라에 대패함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세력의 타격은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성 지역의 무덤은 분구묘로, 거대한 분구를 먼저 쌓고 매장주체부가 들어갈 자리를 다시 되파기하여 무덤을 쓰는 것이 특징인데, 지하에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봉토를 씌우는 경상도에서 흔히 보이는 고총과는 현격히 다른 특징 입니다.


또한 고자국은 백제와 왜와도 교류를 했습니다. 대마도와 규슈에서 소가야산 토기 및 이를 모방한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백제와 신라 사이로 위태로운 국제정세 끝에 6세기 중반 관산성전투 패배 후 사물국고 함께 멸망하면서 신라에 편입되었습니다.



성산가야(벽진국)

성주군에 있었던 소국으로 대가천 연아과 백천 충적지가 발달하여서 여러부족사회들이 밀집 되었습니다. (통합), 고령가야 보다 자료가 더 부족하며,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수로왕의 넷째 동생인 벽로왕이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벽진?

'벽딘'을 반절로 보고 '벽'을 약음차 '벼'로 추독합니다. '딘'을 훈차'돌'로 추독하여 'ㄹ'을 표기한 말음약차로 해석해서 '별'로 추독합니다. 벽딘을 오르지 성의 대웅표기로 이것을 성의 훈인 별로 추독했습니다.

'벽'을 '부르다(푸르다)'의 뜻으로 '딘' = '더러'로 소리의 옮김으로 해석했다.

벽을 '벼리'에서 '리'가 탈락해서 '벼'로 '딘'은 고대 한국어산을 뜻하는 달의 표기로 해석 했다.

'벽'을 아득하다 '벽진'을 멀리 떨어져 있는 '돌'로 해석했습니다. 고대 신라어 '볏'(별)들을 음차한 표기 인데 '볏'(볕)을 훈차로 '별' 훈차로로 '별 성'자로 바꾸었다는 견해가 전해집니다.

'벼리'는 가야어, '이리'는 백제어(전기)로 은하수를 뜻하는 충남, 제주 방언 으리내, 이리내 흔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성산, 성주라는 지명도 벽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견해가 있는 벽진국입니다.


성주 고산동 고분군(지배층의 능원), 금수면 명천동, 대가면 옥화동, 도남동, 월향면 인촌동, 용각동 등 크고 작은 고분이 흩어져 있습니다. 여기에 성주군 가천면 독용산성이 성산가야의 산성입니다.

1963년 현재 사적 제91호로 지정되었다가 군부대 주둔으로 1966년 지정이 해제된 성산성도 위치를 볼때 벽진국의 성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산동 고분군의 토기들이 신라토기들이 주로 발견되었고, 고총에서도 신라식 은제 관모와 요패 장신구가 출토되었습니다. 성주 용양면은 신라식, 고령 다산면은 대가야식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진한 - 신라계 소국이 아니었냐는 견해) 하지만 이른시기에 신라에 병합되었거나 세력하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높지만 가야의 구성국이 아닌지에 대해 불분명 합니다.



고령가야

삼국유사에 나오는 6가야 중 하나입니다. 보통 고령가야라 함은 고령쪽(대가야)을 이야기 하지만, 그와 달리 상주시 합창읍, 이안면, 공검면, 예천군 일대를 있던 나라이며, 가야계 나라가 아니라 진한계 나라로 일찍이 신라에 병합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로왕 백진 ➞ 마종왕 ➞ 이현왕

상주시 합창읍 증촌리 : 고령가야 태조왕릉 과 고령가야 태조비왕릉, 오봉산 고분군(약 700여기의 고분), 왕도골(접해있는 지역으로 고령가야의 왕도가 있다 합니다.) 남산고성(고령가야의 왕궁 있다 합니다) 현재까지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6란의 6국가 외, 가야






비화가야(비지국)

창년군 지역에 있으며, 신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진한 계열 입니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수장급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비자벌(창녕 척경비), 비지국(삼국사기 본기), 비지화(삼국사기 지리지), 비자발(일본서기), 비화가야(삼국유사), 불사국(삼국지 위서) 표기되어 있습니다.


신라에 빨리 복속되어 없어진 소국으로 이야기 합니다. 창녕 6세기 중엽에 세워진 창녕 척경비를 통해서 신라화된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주변에 고령의 반파국, 합천의 초팔국 or 다라국, 함안의 안라국과 낙동강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4세기 후엽 함안 아라가야 양식과 구분되는 독특한 이단 일렬 고배, 5세기 전엽의 유층문 등장, 5세기 중엽의 대각도치형 꼭지 등의 이 지역의 독특한 지역의 요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이점은 낙동강 하류역을 지나 거제, 남해, 마산, 전라남도 해남까지 창녕 양식 토기들이 출토되었습니다. 뿐만 일본까지 출토되었습니다. 대외 교류 흔적이 보입니다. 녹나무제 목관 등 일본계 문물이 보인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교역을 한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6세기기 전엽을 지나면 거의 모든 연구자가 고고학적 지표를 볼때 비지국이 완전히 신라화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라국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던 가야계열 소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라국"은 중국 측 기록인 '양직공도' , 일본 측 기록인 '일본서기'에서 등장합니다. 김해 금관국, 함안의 안라국, 경상북도 고령의 반파국에 비하면 인지도가 낮지만, 고분의 규모와 유물의 질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쌍책면 성산리의 옥전이라고 불리는 언덕으로 여기에 1,000여 기가 넘는 고분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옥전(구슬발)은 과거에도 유물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든 작은 구슬 같은 것입니다.


1985년 경상대학교 주관으로 111유구와 1000여기의 고분이 드러났습니다. 그 이후 발견 까지 합치면 115기 입니다. 삼국사기를 따라 다라국을 신라본기의 파사왕조에 등장한 다벌국으로 비정하기도 하는데, 다벌국은 대구의 달구벌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일본서기 기록에 의하면 이타 : 다라국의 하한기, 541년 4월에 열리는 1차 사비회의에 참여,

홀건지 : 다라국의 이수위, 544년 11월 열린 2차 사비회의에 참여했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문경여행코스 고모산성 가은읍 가볼만한곳

고령여행 가볼만곳 어복실 대가야시장 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 박물관 왕릉전시관 대가야고분군 고령여행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