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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서원 김종직 박한주 신계서을 배향한 고즈넉한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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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위치한 예림서원은 점필재 김종직을 배향하기 위해 1567년 명종 22년에 이도우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현재 예림서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설립 당시에는 덕성서원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이황 선생이 김종직 선생을 추앙하여 서원의 이름을 점필서원으로 변경하고 친필 편액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서원이 퇴락되어 선조 39년(1606년) 위판을 봉안하고 중수하였습니다. 1635년 인조 13년에 상남면 예림리로 이건하고, 1637년 사림의 공의로 예림서원으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이후 박한주와 신계성 선생을 추가 배향했습니다. 예림서원의 배향 인물은 김종직, 박한주, 신계성 선생입니다. 김종직 선생은 1431년 6월 밀양에서 출생한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입니다. 사림파의 영수이자 학문적으로 유림의 태두로 여겨집니다. 함양군수, 경연관, 참교, 선산부사를 거쳐 응교가 되었고, 이후 승정원도승지, 이조참판, 동지경연사, 한성부 판윤, 공조참판, 형조 판서, 지중추부사를 역임했습니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당했습니다. 밀양 지역에는 김종직 선생의 묘 옆에 호랑이 무덤이 함께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인망호폐 비석이 있습니다. 박한주 선생은 본관이 밀양이며, 조선 전기에는 김종직 선생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간원헌납, 평해군수, 예천군수 등을 역임했으며, 한성부참군, 사헌부감찰, 사간원정언, 성균관전적 등의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부모님의 봉양을 위해 자진하여 창녕현감으로 부임하여 백성들을 지성으로 보살피고 교화시켰습니다. 그 공로로 임금은 비단과 교서를 포상하고 가자했습니다. 그러나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처형당했습니다.  신계성은 밀양 출신의 유학자로, 후세에 송계선생으로 불렸습니다. 조식, 이희안과 함께 ‘영남의 세고사’로 병칭될 만큼 명망이 높은 학자였습니다. 밀양에서 태어나 점필재 김종직을 사숙하고 선산 지역의 송당 박영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