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전투
#포항전투
낙동강 교도부에 대한 적 공세를 악화 시켰고, 학도의용군의 참전, 많은 희생자를 내게 격전지 입니다.
포항은 지형이 산악이 많은편이며, 산줄기가 남북으로 뻗어 있어서 공격에는 유리하나 방어에는 불리한편이라고 합니다. 안강에서 포항으로 흐르고 있는 형산강은 피아 공방전의 방패가 되었습니다. 9.15 인천상륙작전이 강햄된 훨씬 후에도 전투가 계속되며, 교두보의 전전선을 통해 가장 늦게까지 끌고 있던 전쟁이었습니다.
낙동강교도부의 구축명령이 8월 1일에 있었고, 북괴군 제12사단이 안동에 침임하고, 동해안을따라 남진하고 있던 북괴군 제5사단은 영덕군 강구쪽에서 카이젤 수염의 석원준장이 지휘하는 국군 제3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남진이 저지되었습니다.
적 제5사단이 강구에 묶이고 있을 때 포항점령을 명령받은 적 제12사단이 안동을 거쳐 8월 11일 적 제766부대의 일부병력과 함께 포항시내로 돌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8월 10일부로 포항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민부대와 수도사단이 일부병력을 이에 투입하는 한편 장사동에 고립된 국군 제3사단을 해상으로 철수 구룡포에 상륙시킨 후 포항전선에 출동하였습니다.
포항전선에서 8월 28일 공세를 다시 취하기 시작하여 9월 23일에 최후의 공격으로 25일간에 걸친 처절한 공방전은 끝내 아군의 승리로 막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낙동강승전기념관 자료에 의하면, 국군 약 1만 2천명, 북한군 약 8천 5백명 이라고 합니다. 제1군단 군단장 소장 김홍일(9월 1일부터 준장 김백일), 제3사단 준장 김양원(9월 1일부터 대령 이종찬), 제 22연대 연대장 중령 김응조, 제1대대 대대장 중령 이소동, 제2대대 대대장 중령 정영록, 제3대대 대대장 중령 정순민, 제23연대 연대장 대령 김종순, 제1대대 대대장 소령 김우영, 제2대대 대대장 대위 최상준, 제3대대 대대장 대위 박종병, 제26연대 연대장 중령 이백우(9월 1일부터 대령 이치업), 수도사단 제 1연대 연대장 중령 한신, 민부대 부대장 대령 민기식 입니다.
북한국은 제2군단 군단장 중장 김무정, 제5사단 사단장 소장 마상철, 제12사단 사단장 소장 최인두, 제766격대 부대장 소장 오진우 입니다.
근 3천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중 경북도출신만 55개교 286명에 달합니다. 그리고 그 전사자수는 통계자료에 따라 다음과 같습니다.
경북중,고교 53 영신중 1 영주농림중고 7 상주농잠고 1 대구중 7 달성고등공민 1 영주내성중 1
청도모계중 3 능인중고 3 경주중고 48 농기중 5 청도농남중 1 계성중고 6 경주문화중고 7
의성공업중고 5 김천농림중고 4 영남중고 6 경주공업중고 11 의성중고 2 김천중고 2
대구공업중고 21 문동공등공민 1 의성농업학교 2 자인중 1 대구농림중고 8 안동중고 4
고령중고 2 선산오상중고 3 성관중고 1 안동경인중고 1 문경중 2 성주농업중고 1 대구대학 4
대구사범 2 안동경덕중 1 포항동지중고 2 달성원예중 1 대구실업중고 2 안동사범 7 포항수산고 1
대구덕복중 1 안동신망중 1 포항중고 2 경북대학교 8 대성중 2 안동병산중 1 영일중 1 포항수산대학1 대륜중고 7 안동농림중고 3 상주김창중 4 총 55개교 286명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