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여행 일정 이순신공원 디피랑 동피랑 강구안 당일치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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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여행일정  이순신공원 👉 디피랑  👉  동피랑  👉 강구안 #이순신공원 바다와 함께 하는 공원이기에 바다를 바라보면 아름다운 공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날이 좋다면 전체적으로 사진찍기 좋은 공원이라 생각이 듭니다. 바다바람이 불면 벤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잠시 사색하기 좋아 보였습니다.  이곳은 위치상 임진왜란 3대 대첩중에 한산도대첩의 현장에 만들어진 공원이라 하네요. 앞에 가시면 천자총통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때 그현장이 실감이 납니다. 꽃필때오시면 꽃들이 있기에 더 이뻐 보일 것 같아요. 그네벤치가 있어서 거기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기에 좋습니다. 6~7월에는 수국이 예쁘기 피어나는 곳 이랍니다.  한산대첩에 관해서 설명도 적혀있네요. 아름다운 바다뷰를 감상하면서 해안가에 있는 데크 계단길을 거닐며 걸어보세요.  디피랑까지 차로 7분거리 입니다.  빛의 정원 통영 디피랑이 핫하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아마도 야간명소로 알려져서 그런 것 같아요. 낮에 오셨다면 루지와 케이블카를 타도 좋고, 밤에 오셨다면 디피랑에 가셔서 야경과 미디어아트가 결합한 아름다움을 구경하세요.  야간시간에는 운영시간은 19:00 - 24:00 이며,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랍니다. 매표마감시간은 22:00 랍니다. 참고하세요.  입장권 : 성인 15,000원 / 청소년 (13~18) 12,000원 / 어린이(만6세 ~ 12세) 10,000원  20% 할인 - 통영청마문학관 / 삼도수군통제영 / 조선군선 거북선 관람 / 수산과학관 이용시 50% 할인 - 통영 케이블카 당일 / 통영어드벤처타워 당일 이용시  디피랑 + 케이블카 : 23,200원 / 디파랑 + 어드벤쳐 20,900원 / 디피랑 + 케이블카 + 어드벤처 32,000원 디피랑까지 차로 2분거리 입니다.  #동피랑 동피랑벽화마을은 마을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고, 꼭대기에는 동포루가 있답니다. 주차는 올라오는길에 주차라인에 주차를 하시면 됩니다. 동포루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갈래 길로 되어 있고, 곳곳에 벽화와 조

경주 가볼만한곳 첨성대 야경명소 동궁과 월지 대릉원 황리단길 경주국립박물관 경주여행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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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코스  대릉원  👉 황리단길  👉 첨성대  👉 동궁과월지        👉 경주박물관 #대릉원 #천마총 # 사적제512호 대릉원으로 들어가시면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남분 과 북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신라의 왕, 오아비, 귀족층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분 밀집 지역으로 사적제512호 입니다. 현재 입장료는 무료 입니다.  천마총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 축조된 고분으로 추저됩니다. 1973년 발굴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 입니다. 높이 12.7CM, 지름 50cm의 능으로 봉토 내에는 냇가의 돌로 쌓은 적석층이 있으며, 안에는 길이 6.5m, 너비 4.2m , 높이 2.1m의 나무로 된 방으로 보입니다.  출토된 유물로 새날개 모양관식, 금 허리띠, 금모자, 금관, 금동으로 된 신발 등 다양한 유물들이 11,526점 출토되었습니다. 실제 유물들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천마도는 국보 제207호로 지정되었고, 긴 혀를 내밀고 꼬리를 추켜세워 마치 하늘을 나는 듯 묘사된 천마가 죽은 사람을 하늘 세계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현재는 말이 아니라 기린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황리단길 내남넨거리부터 황남초등학교 네거리까지를 황리단길까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황남동 + 경리단길을 합친 말로 가장 유명한 길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현재 주변 관광지로 인해서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한옥이나 길가 상점을 개조한 후에 음식점, 카페, 게스트하우스, 기념품점 등 다양한 상가가 입점해하며서 경주의 가장 큰 핫플 중 하나 입니다.  #첨성대 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시대의 천문관측소 입니다. 현재는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높이는 약 9.5m 이며, 첨성대가 위치한 곳은 옛날 경주부 남쪽 월남리라고 합니다. 선덕여왕때(재위 632 ~ 647년 에 축조되었습니다. 삼국유사 기이권2에 의하면 "이왕대에 돌을 담듬어서 첨성대를 쌓았다" 라는 기록되어 있습니

밀양 가볼만한곳 나들이코스 모음 영남루 표충사 위양지 월연정 트원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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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후기에 지어진 목조건물로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더불어 3대누각 유명합니다. 본루를 중심으로 우측에는 침류각이 있고, 좌측에는 능파 간에 웅장합니다. 정면5칸, 측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기둥 사이에 넓게 잡고 굵은 기둥으로 누마루를 높여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남루 뿐만 아니라 침류각, 능파각, 만덕문, 일주문, 천진궁, 아랑각까지 다양한 구조로 되어 있어요. 영남루에 올라가실때는 신발을 벗고 올라 가시면 됩니다. 올라가서 보는 경치가 멋지며, 포토존으로도 유명합니다.  바로 맞은편에 천진궁이 있는데, 단군과 역대 왕조를 세운 시조의 위패를 모셔둔 사당이랍니다. 중앙에 단군의 영정과 위패가 있고, 동쪽 벽에는 부여,고구려, 가야, 고려의 시조 위패, 서쪽 벽에는 신라,백재,발해, 조선시대의 시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주변에 밀양관아, 읍성,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 함께 있기에 함께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표충사는 입장료는 없지만, 24.4.1 부터 주차요금이 있습니다. 승용차 4천원, 대형버스 9천원 입니다. 또한 오후 7시에 주차장이 폐쇄된다고 하니 미리 출차를 하셔야 합니다. 내부에는 수충루, 표충서원, 표충사당, 사천왕문, 설법전, 충예당, 만일루, 칠성전, 영각, 웅진전, 팔성전이 있습니다.  사당 표충사에는 사명, 서산, 기허 등 임진왜란 때 활약한 세 대사를 모시고 있고, 표충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습니다. 만일루의 경우에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로 등록되어 있고, 1860년 월암선사가 만일의 기도 끝에 세웠으며, H자형의 독특한 건축물로 불교의 백팔번뇌와 48원을 상징하기 위해 108평 부지에 선방 48칸을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주변을 거닐며 산책하고 나들이하기 좋은 코스입니다.  5월의 위양지는 이팝꽃이 흩날립니다. 힐링의 산책길이기도 하죠. 위양지 못에 우뚝 솟은 완재정 기와지붕 위에하얀 눈꽃처럼 하얀눈에 내린 모습이 있죠. 5월 뿐만아니라 4계절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위야지 랍니다. 각 계절

압독국

 압독국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원삼국시대 경상도지역에 있던 진한 12개 소국 중 하나이며, 경산에 있던 나라로 압량소국으로 불린 국가입니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존재했습니다. 기원후 4세기 무렵에 신라에 복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압량주 군주로 김유신이 왔습니다. 신라가 지방관을 파견하기전에는 약 200여년 동안은 수장층이 자치권을 보장받아 지역을 다스렸고, 압독은 신라가 지방에 주군현제를 새행한 6세기 이후에는 압독군, 압량주로 불렸으며, 8세기에는 장산군으로 불렸습니다.  압독국은 임당유적 일대를 중심읍락이며 전성기에는 금호강과 오목천에 의해 형성된 충적평야에서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고 토기 제작 전문 공방에서 대량의 토기를 생산하고, 유통하였습니다.  커다란 무덤을 축조하는 등 발전된 면모를 갖춘 고대국가형성의 한축을 보였다고 합니다.  각종 유물들, 인골, 동물유존체, 어패류와 순장 등은 고대 사람들이 정치,사회 구조, 내세관, 제사풍속, 식생활 등을 비롯한 DNA를 활용한 인물복원등에 이르기까지 압독을 을 비롯한 한반도의 고대 문화를 복원하고,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기계안강전투

 #기계안강전투 기계, 안강(동부전선) 전투는 낙동강 교두보 중요한 역할을 한 전투입니다.  1950년대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안강,기계에서 국군 수도사단이 북한군 12사단의 남진을 저지했던 방어전투였습니다. 적 8월 공세때 14일 부터 18일까지 전개된 아군의 대승, 적 9월공세 8월 26일 부터 9월 17일까지 대규모의 소모전으로 나누어집니다.  9.15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한 직후에 치열하게 8월 26일부터 9월 17일까지 피해가 막심한 출혈과 궤멸일보직전까지 놓인 전투 였습니다. 북한군의 기계 정렴으로 인해서 북한이 남쪽 안강까지 통해 경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국군의 방어선은 동서로 양분돼 대구와 포항이 위태롭게 되었으며,  당시에 투입된 25연대엔 재편성으로 안강에 급파 40여일의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습니다.  낙동강전승기념관 자료에 의하면 당시 국군측은 약 1만명, 북한군은 1만 5천명이었습니다. 수도사단 사잔장 대장 백인엽(9월 1일부 대령 송요찬) 제1연대 연대장 중령 한신, 제1대대 대대장 소령 김학묵, 제2대대 대대장 소령 류항박, 제3대대 대대장 대위 강완채, 제18연대 연대장 대령 임충식 제1대대 대대장 소령 장춘권 제2대대 대대장 소령 정승화 제3대대소령 박철용 기갑연대 연대장 대령 백인권 제 1대대 대대장 소령 정세진 제2대대 대대장 소령 박도경 제3대대 대대장 소령 임관목 포항지구전투사령부 사령관 대령 이성가, 제25연대 연대장 중령 유해준 제1대대 대대장 소령 최재홍 제3대대 대대장 소령 이방우, 제17연대 연대장 대령 김희준 제1대대 대대장 소령 김우영, 제2대대 대대장 소령 조영구 제3대대 대대장 소령 류창훈, 제26연대 연대장 중령 이백우 제3대대 대대장 소령 정진, 제1유격대대 대대장 소령 정진, 제2유격대대 대대장 중령 김용주, 해군육전대 대장 소령 강기천 입니다. 북한군은 제12사단 사단장 소장 최인두, 제5사단 사잔장 소장 마상철, 제766부대 부대장 소장 오진우입니다.   

포항전투

 #포항전투 낙동강 교도부에 대한 적 공세를 악화 시켰고, 학도의용군의 참전, 많은 희생자를 내게 격전지 입니다. 포항은 지형이 산악이 많은편이며, 산줄기가 남북으로 뻗어 있어서 공격에는 유리하나 방어에는 불리한편이라고 합니다. 안강에서 포항으로 흐르고 있는 형산강은 피아 공방전의 방패가 되었습니다. 9.15 인천상륙작전이 강햄된 훨씬 후에도 전투가 계속되며, 교두보의 전전선을 통해 가장 늦게까지 끌고 있던 전쟁이었습니다.  낙동강교도부의 구축명령이  8월 1일에 있었고, 북괴군 제12사단이 안동에 침임하고, 동해안을따라 남진하고 있던 북괴군 제5사단은 영덕군 강구쪽에서 카이젤 수염의 석원준장이 지휘하는 국군 제3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남진이 저지되었습니다.  적 제5사단이 강구에 묶이고 있을 때 포항점령을 명령받은 적 제12사단이 안동을 거쳐 8월 11일 적 제766부대의 일부병력과 함께 포항시내로 돌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8월 10일부로 포항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민부대와 수도사단이 일부병력을 이에 투입하는 한편 장사동에 고립된 국군 제3사단을 해상으로 철수 구룡포에 상륙시킨 후 포항전선에 출동하였습니다. 포항전선에서 8월 28일 공세를 다시 취하기 시작하여 9월 23일에 최후의 공격으로 25일간에 걸친 처절한 공방전은 끝내 아군의 승리로 막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낙동강승전기념관 자료에 의하면, 국군 약 1만 2천명, 북한군 약 8천 5백명 이라고 합니다. 제1군단 군단장 소장 김홍일(9월 1일부터 준장 김백일), 제3사단 준장 김양원(9월 1일부터 대령 이종찬), 제 22연대 연대장 중령 김응조, 제1대대 대대장 중령 이소동, 제2대대 대대장 중령 정영록, 제3대대 대대장 중령 정순민, 제23연대 연대장 대령 김종순, 제1대대 대대장 소령 김우영, 제2대대 대대장 대위 최상준, 제3대대 대대장 대위 박종병, 제26연대 연대장 중령 이백우(9월 1일부터 대령 이치업), 수도사단 제 1연대 연대장 중령 한신, 민부대 부대장 대령 민기식 입니다.  북

왜관전투

 1950년 8월 1일 워커중장의 명령으로 낙동강방어선이 형성되고,이에 따라 낙동강상의 대부분의 교량들을 8월 4일 폭파 되었으며,  당시에 왜관 북쪽의 경북의성군단밀면 낙정리에서 동해안의 영덕까지의 동부산지대는 국인 담당하고, 낙동강서부인 왜관 동북쪽의 작오산에서 마산 진동리, 진해만에 이르는 낙동강 연안 일대는 미군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게이소장이 지휘하는 미제1기병사단은 대구 서북상 20km지점에 있는 왜관으로부터 대구 서남방20km 지점에 있는 달성군 현풍 북쪽에 이르는 대구방어의 서측면을 담당했습니다. 전투병력은 1만 3천명이었고, 북괴군은 제3사단과 제105기갑사단의 병력 1만 8명 이었습니다. 미군과 북괴군의 대결입니다.  8월 9일밤부터 거의 매일밤 적은 도하작전을 감행하고, 일부 성공하고 왜관 남쪽에 있는 금무봉을 점거하였습니다. 금무봉은 연3일간의 치열한 공방전끝에 탈환하였습니다.